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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영 박사 칼럼, 세상의 대세를 살피라 (Watch the General Tendency of the World)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기자명 : 이창희 입력시간 : 2021-08-10 (화)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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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세상의 대세를 살피라  
(Watch the General Tendency of the World)

세상은 선악(善惡)이 아니라 대세(大勢)를 따라 움직인다. 선이든 악이든 대세가 조성되면 그 대세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특수한 경우에 혁명이라는 극단의 조치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엄청난 위험 부담과 부작용을 감수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보다도 몇 배의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번영, 그리고 종교적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악의적 대세”를 지양하고 “선의적 대세”를 조성해야 후일에 국민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종교적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내년 대통령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어서 대선(大選) 후보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4, 5년 전 대통령의 탄핵 폭풍이 지나가고 숱한 우여곡절 끝에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을 약 8개월 앞둔 현재, 여야의 대선 후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여당이나 야당에서 한두 사람씩 물망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여론조사를 통한 지지율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종국에 가서는 결국, 한 사람의 대통령만이 결정되는데, 과연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세(general tendency)를 잡을 것인가의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다른 대선과 달리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탄핵정국 후의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실정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판단에서 결사 항쟁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선의 대세(大勢)는 어느 편으로 기울어질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세계정세는 물론, 국내정세에서도 거의 어김없이 대세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세(大勢)는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민심이 기울어지는 쪽으로 이해가 되는데, 그래서인지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진리인 것처럼 돼 버렸다. 과연 “민심이 천심이라”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선악 개념의 공식(formula)에 대입해서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문제는 단답(單答)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부작용의 원인은 여론조사의 문제점과 선거의 투개표 결과가 현대 과학의 수비학적 계산(numerological computation)의 신비스러운 기능(mysterious function)에 좌우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학적으로 투표한 결과를 정확히 계산해 낼 수도 있다. 이는 완벽한 선거제도와 투개표를 순전히 수작업(手作業)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해야 한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도 도미니온(dominion)이라는 투개표기의 사용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다시금 재검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먼저 경험한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유권자가 현장에 가서 신원을 확인하고 직접 투표하며, 삼엄한 감독하에 수개표를 원칙으로 한다. 

사실, 대세라는 것은 민심을 의미하는데 과연 민심이 절대적일 수 있을까? 원리적으로 보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즉 “선의적 대세”와 “악의적 대세”로, 이는 인간이란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민심 역시 절대적일 수 없다는 진리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이러한 실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에서는 선악의 개념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선이든 악이든 독재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도록 민심을 유도한다. 

물론, 개중에는 내심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선전 선동 내지, 교육을 통해서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다 보니, 또다시 베이컨의 우상론(Bacon’s Theory of Idols)이 생각난다. 인간 본성의 중심 “NAVE”가 이미 이성(reason)에 장악되어 있고, 잘못된 교육을 통하여 뒤틀린 오성(understanding)에 지배받고 있으므로 “선의적인 대세” 파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선의적 대세”와 “악의적 대세” 두 가지 실례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첫째로, “선의적 대세”로는 이스라엘의 다윗(David) 왕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은 사울(Saul) 왕이다. 그도 역시 하나님께서 사무엘(Samuel) 선지자를 통해서 세우신 왕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정책과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미움을 샀게 되었, 다음 후계자로 예상된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심지어 다윗을 자기 수중에 넣기 위하여 자기 딸(미갈, Michal)과 정략결혼을 시켜서 사위로까지 삼았다. 

그러나 그의 악행으로 인하여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노여움이 더해갔고 백성(.국민)의 마음이 그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천심(天心)과 백성의 마음인 민심(民心)이 떠났기 때문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이는 “선의적 대세”를 의미한다. 그러면, 사울(Saul) 왕에게서 왜 민심이 떠나게 되었는가? 이는 한 마디로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일관하는 악정(惡政)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 

이렇게 해서 대세(大勢)는 다음 왕이 될 “다윗”(David)에게로 기울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대세가 다윗에게 기울게 되었는가? 첫째로, 다윗의 인격(人格)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불의(不義)와 부정(不淨)을 싫어하고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철저히 회개(悔改)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愛國心)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보여준 다윗 자신의 통렬한 회개와 애국심을 보아 알 수 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51:3, 9, 14). 그리고 그의 애국심은 하늘에 닿았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대상 21:17). 백성을 위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을 희생의 제물로 내놓은 것이다.
리고, 그의 지혜와 능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윗의 시편을 읽어보면 그의 지혜가 얼마나 탁월하며, 그리고 키가 2.7 미터로, 갑옷 무게 126파운드, 단창의 창날 무게 16파운드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과 싸워 이겼고, 그리하여 승리하고 개선하는 다윗을 맞이하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보면 가히 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삼상 21;11).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용감한 전사였으며 훌륭한 왕이었다. 이는 그의 훌륭한 인격과 탁월한 능력으로 인하여 만천하에 알려졌고 모든 백성이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도 이러한 위인이 나타나 대세를 잡아야 할 것이다. 온 백성들의 마음, 즉 민심이 다윗에게로 쏠린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선의적 대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받을 징조로, 당시 만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이뤘다.

둘째로, “악의적 대세”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무조건 여론의 대세는 옳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악의적 대세”가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는 데 일등공신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세였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가진 수단을 다하여 중상모략하였다. 특히 기득권을 잡고 있던 정치 세력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그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결국, 인민재판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 당시 백성들은 멋도 모르고 정치적 선동자들에 의해 자신의 구세주를 죽인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중들의 대세는 예수를 죽이자는 여론몰이였다. 

정치꾼들과 종교 프락치들에 의해 선동된 백성들이 사법권을 쥐고 있는 빌라도(Pilate)를 몰아붙였다. 사실, 그 당시 빌라도는 법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정말로 청렴하고 의로우신 예수를 정죄하는데 온 정력을 기울여,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에 손을 씻으려는 빌라도를 몰아붙였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민심(민중)의 아우성 소리이다. 심지어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예수는 옳은 사람이니 그에게 상관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무죄하고 의로우신 예수를 죽인 죗값을 톡톡히 치렀다. 백성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마 27:25)라고 외친대로 유대인이 전 세계로 유리하게 되었고, 독일 나치에게만 600여만 명이 가스실에서 처참하게 학살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저주다. 

이제 결론으로 정리해보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막무가내면 그대로 허용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허용적 섭리이다. 하나님은 “선의적 대세”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악의적 대세”를 고집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유기(reprobation)라고 한다. 뱀의 꾀임으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내버려 두셨다. 그 결과 오늘날 후손들이 비참한 저주 아래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다. 사람들이 불법과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악의적 대세”를 따르겠다면 그대로 버려두신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선 사람들이 책임지게 된다. 신자들의 생각에 하나님께서는 왜 “악의적 대세”를 제재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불만스러워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예수께서도 “악의적 대세”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으셨다.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를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는 검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Malchus)의 귀를 잘랐으나, 예수께서는 가만두라고 하시고,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라고 질타하셨다(마 26:51~53). 그리고 자기를 잡으러 온 무리를 향하여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되는 것은 성경(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다(막 14:48~49). 

예수께서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시므로, 당시 세상의 대세는 어두움의 권세에 속한 “악의적 대세”라는 사실을 지적하셨다(눅 22:52~53).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힘이 없고 권세가 없어서 “악의적 대세”를 따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대의를 이루시기 위한 것으로, 당시는 어둠의 때 곧 마귀의 때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공중과 세상은 마귀들의 활동무대로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악의 무리가 극성을 부리며,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다(벧전 5:8). 그러나 결국은 예수께서 세상을 접수하시고 통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악의적 대세”를 따르면 화를 받아 불행하게 되지만, “선의적 대세”를 따르면 복을 받아 번영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과거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이와 같은 진리를 여러 번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앞날의 행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악을 잘 분별하여 “선의적 대세”를 따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도 국민이 “악의적 대세”와 “선의적 대세”를 잘 분별하여 “선의적 대세”를 따르게 될 때, 국민의 안녕과 번영, 그리고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물론, “악의적 대세”를 역류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극단의 조치인 혁명(revolu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엄청난 위험과 부작용을 감수하고 그것의 몇 배의 성장과 번영을 이뤄놓아야 한다. 만일에 그 혁명이 역적(逆賊)인 성격이라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역사상 수많은 혁명이 일어났다. 그중에서 “선의적 혁명”은 빛을 발했지만, “악의적 혁명”은 혹독한 비판과 심판을 받아 왔다. 사람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대세를 잡아 나라를 잘 다스릴만한 인물이 없다고 입을 모아 한탄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그래서 난세”라고 일갈한다. 

그러면 이 난세(亂世)에 나라의 지도자로서 적합한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간단히 말해서, 첫째, 정치적 원죄와 전과가 없어야 한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도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원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줄곧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둘째, 존경받는 인격자여야 한다. 특히 오늘날 한국에서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나라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반드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지혜와 판단능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특히 위기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신속하고 용기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훌륭한 인재 등용에 능해야 한다. 마지막 여섯째로 뜨거운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지식정보(intelligence information)는 현대 과학기술이나 훌륭한 참모들을 통해서 얻으면 된다. 

-  THE END -


중앙취재본부 이창희 기자 jesus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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