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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선교적 삶 (재)국제기독교선교회연맹 이사장 양창부 목사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거칠고 황량한 복음의 길 계속 개척”
기자명 : 문형봉 입력시간 : 2022-08-01 (월)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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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양창부 목사


“하나님, 이 고통에서 건져주시면 평생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총상이 너무 깊었다. 척추는 무너지고 장기들도 손상이 심각하다. 급한대로 수술을 했지만 소생할 가능성은 1%다. 병원에서는 포기하고 고향으로 전사통지서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 눈을 감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슬펐다. 마지막으로 절규하듯 하나님께 기도했다. 청년의 피 묻은 기도는 하늘에 닿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생명의 호흡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척추 수술을 3번이나 했다. 아직도 척추에 쇠핀 16개가 박혀 있다. 6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중상을 입은 탓에 60년이 지난 지금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도 이 모든 고통을 견디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양창부 목사(열린방소 원로목사)는 해병대 장교로 6.25전쟁에 참가했다. 가장 치열했던 인천상륙작전 중 시가지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다. 의사도 포기했던 생명,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누나의 등에 업혀 교회를 다녔던, 그 기억을 더듬어 평생을 바치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뜨거운 심장이 다시 뛰게 했다.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하고는 그때 한 약속을 지켰다. 오직 선교를 위해 한 평생 살았다. 올해 88세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선교사역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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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부 목사는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했으니 남들처럼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광야 바람의 길을 따라 왔다. 그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뉴저지주 콜롬비아신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재)국제기독교선교회 연맹대표이사, 국제법인 세계문학회 회장, (재)기독교단체(총회)신학교연합회 대표회장, 자랑스런해병대100인회 회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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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에서 오세영(좌측)원로목사와 함께 

양창부 목사는 복음의 개척자다. 한 곳에 안주하기 보다는 거친 광야로 나갔다.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광야는 황량하다. 바람만 임의로 분다. 안정적인 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광야를 회피한다. 하지만 양 목사는 광야의 길을 걸었다. 바람 부는 광야 앞에 섰다. 그는 대한민국 국가유공자이자, 1급 장애인이다. 최소한의 생활비가 보장된다. 영광의 상처가 가난한 목회자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1967년 충북 안차리교회를 시작으로 71년에는 대전 성진교회(현 중문교회, 장경동 목사 시무)를 개척했다. 어려운 시대에 개척생활은 고달프고, 힘들었다. 아이들은 대전에 두고 부부만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남을 가르치면서 정작 아이들이 부모를 필요로 할 때 거기에 없었다. 평생 살아오면서 아이들에게 빚진 것이다. 개척자의 삶이 그렇다.

전남 강진, 울릉도, 울산, 당진을 거쳐 77년 서울 화곡동 동원교회에 부임해 99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89년부터는 중국을 선교하기 시작했다. 친척 방문으로 백두산 관광을 갔다가 이곳에도 복음이 필요한 것을 목격했다. 복음을 위해 서라면 계산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교회들을 개척해 보았기에 새로운 땅에서 선교는 두려움보다 설렌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된다. 사모 강말희 목사와 함께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사역을 확장해 나갔다. 96년에는 중국 연변대학교 국제의학원에 입학해 중국의사(내과)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나님, 다시 한 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면 평생 복음만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러면서 50개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마음 먹였죠. 국내와 중국에서 개척한 것을 합하면 기도한대로 열매를 맺고 있어요. 아직 선교는 끝나지 않았어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거칠고 황량한 길을 계속 개척해 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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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양창부 목사 

양창부 목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밀고 나가는 고지식한(?) 목사다. 적당히 타협하면 편한데,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세상에 편승하기보다 곧은 길을 간다. 교단의 정치파벌이 싫어서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교단을 뛰쳐나왔다. 순수하게 복음만 전하자는 설립정신을 갖고, <예장합동개혁교단>을 새롭게 만들었다. 후진들을 양성하기 위해 총회신학원도 운영하고 있다. 교단정치에는 고집이 있지만 복음에는 유연하다. 복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은 본질이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도구는 시대마다 새롭게 창안되어야 한다. 시대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지혜다. 

양 목사는 법인 국제기독교예술신학연구원 대표다. 2015년 7월에는 방송을 매개체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 <멋진 인생>, <한국교회는 미래가 있는가> 등 27편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의 주제는 복음이다. 평생 신앙시를 쓰면서 고뇌하고, 시어로 한국교회를 깨운다. 그는 문학, 교육학, 신학, 선교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공부하는 목회자다. 신학교재로 <성경총론1집-3집>, <조직신학>, <목회상담학>, <선교신학> 등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24권의 신학서적을 저술했다. 또 설교집 <영적전쟁의 승리> 등 다수를 내고, <목회자의 기본(본질>, <현지 선교사역에서 ‘나하만’>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과제를 발표했다.

이뿐 아니라 목회자면서도 사회복지사, 청각관리사, 교정복지, 보육교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기도했던 청년은 올해로 88세 노인이 되었다. 그날 서원기도 했던 대로 한 평생 복음을 위해 살았다.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했으니 남들처럼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광야 바람의 길을 따라 왔다. 그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뉴저지주 콜롬비아신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재)국제기독교선교회 연맹대표이사, 국제법인 세계문학회 회장, (재)기독교단체(총회)신학교연합회 대표회장, 자랑스런해병대100인회 회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대한민국 인간상록수 상, UN UP 총장으로부터 대사로 임명되었고, 2020년 7월 14일에는 자원봉사상을 수상했다. 목사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양창부 목사는 영원한 현역이다. 오늘도 현장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복음을 남기고 있다.
 
금번에 양창부 목사가 사단법인 한국원로목사총연합회 공동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문형봉 기자 mhb0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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