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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영 박사 칼럼,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Can the Received Salvation be Cancelled?)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기자명 : 이창희 입력시간 : 2023-01-20 (금)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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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비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행한다 해도 육신을 가진 인간은 항상 성령을 따라 행하지 못하고 실족하여 범죄하곤 한다. 만일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요일 1:8~9). 그렇다면 평생 범죄와 회개를 반복하게 되어 죽을 때까지 정죄와 용서를 반복하며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하다가 죽을 때 마지막 한방에 지옥행과 천국행이 결정된다는 결론이 아닌가? 그렇다면 실존주의 신앙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원죄와 자범죄'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다. 물론 성령을 따라 행하야 하지만 그러나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 완벽한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행함은 인간의 협력을 요하는 관계로, 행함으로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다(롬 3:20; 갈 2:16).

문화적 환경으로 접근하는 것은 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선호하는 구조론적 방법(structural method)으로, 이는 철학적 방법(philosophical approach)인 가설방법(hypothetical methodology)이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확실한 전제가 아니라 가정해놓고 문화적 상황에서부터 출발하는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ology)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사용해서 성경을 연구할 경우 마지막에 가서는 엉뚱한 결론이 나올 확률이 대단히 높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 접근방법(ontological approach)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절대성(absoluteness)을 전제(presupposition)하는 고정된 전제적 방법이 아니라, 그 가능성(probability/possibility)을 가정(hypothesis)하고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다. 이러한 경우에 문화적 상황의 고려로 인하여 신론(theology)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성(absoluteness)이 상대성(relativity)으로 변질하여,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같이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by Richard Dawkins)을 그려내거나, 무신론이나 사신 신학(Atheism or God death theology by Friedrich W. Nietzsche)을 주장하기도 한다. 

구원론에 있어서 칭의(중생)에 의하여 즉각적으로 단번에 얻은 구원을 다른 말로 영생인 “유업의 상”(골 3:24)이라고 하며, 평생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구원을 다른 말로 성화 즉 행함에 따른 “보상의 상”(고전 3:8)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믿음으로 단번에 얻은 “유업의 상”(영생)은 영원한 것이며, 점진적으로 얻는 “보상의 상”(성화)은 행함에 비례하여 가중되는 것이다. 행한 대로 갚으시고(마 16:27)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롬 2:6)는 뜻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보면 이 두 가지 구원이 분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보면 연결된 하나로 보인다. 

그래서 개혁신학에서는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뗄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약 2:20-26). 이 부분에서 “유업”(영생)은 칭의(중생)로 이미(already) 단번(즉각성)에 얻은 완성된 구원으로 불변적인(unchangeable) 반면에, “보상”(상급)은 성숙(성화)의 과정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아직(not yet) 미완성(점진성)된 구원으로 가변적(changeable)이다. 영생은 자범죄를 포함하여 원죄해결 시 단번에 얻어지는 것으로 영원한 것이며, 상급은 일생에 계속되는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잃을 수도 있고 더 얻을 수도 있다(고전 3:12-15).

중생으로 얻은 구원(영생, 요 5:24)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났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이다(요일 3:9; 5:18; 벧전 1:23). 이는 첫 아담이 실패한 언약은 행위언약(옛 언약)이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성취하신 언약은 은혜 언약(새 언약)으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만일 첫 아담과 같이 여기서 또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재 창조(구속) 마저 또 실패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은 첫 아담과 같이 영생에서 탈락할 수 있는 원죄와 같은 죄를 범할 자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원죄와 같은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보이고 성령을 욕되게(거역)하고 짐짓 범하는 죄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맹렬한 불 심판만 기다린다는데 이는 가룟 유다와 같이 하늘의 은사와 성령에 참여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중생하지) 못한 사람의 죄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의미한다(히 6:6; 10:26-28; 요일 5:16-17).  

물론, 중생한 사람도 죄를 범할 수 있으나 그것은 원죄와 같은 ‘주를 부인하는 죄’가 아닌 자범죄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자범죄)까지도 사해주셨다는 보증으로 성령의 인을 치셨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탈락하지 않는다. 다만 중생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범죄(자범죄)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회개와 징계(채찍)라는 방식으로 보응을 받는다(히 12:4-13). 때로는 그 징계가 성군인 다윗이 왕좌에서 쫓겨나 아들 압살롬을 피해 광야를 떠돌며 원수의 위협과 질병에 시달렸던 것과 같이 무척이나 고통스럽기도 하다.

만일, 유업의 상(골 3:24)인 영생이라는, 이미(already) 얻은 구원(요 5:24)을 잃을 수 있다면(Arminianism), 구원을 다시 얻기 위하여 다시 거듭나야 하는데(요 3:5), 그렇다면, 계속해서 영생(구원)을 얻었다, 잃었다를 반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생을 수없이 반복하다 못해 마지막에 취소된(잃은) 중생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종 구원에서 탈락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는 말도 안되는 것이다. 니고데모의 의문대로 육신이 모태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으로(in the Spirit) 나는 것도, 다시 두 번 세 번 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과 출생은 한번(단번)으로 끝나는 것이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한 것은 최종적인 죽음이 아니라 성화를 위하여 "매일 같이 자기(육성)를 처서 복종시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출생이란 육으로든 영으로든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지 윤회설과 같이 반복해서 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회적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증거한 대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사람을 기록한 "생명책"(The Book of Life)과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the books)에 의하여 "영생"과 "상벌"에 관하여 심판을 하신다고 했다(계 21:11~15). 생명책에 따라 영생이 결정되고 책들에 기록된 대로 상급과 형벌이 결정된다. 하기야 어떤 이들은 행위에 따른 상급마저 부인하기도 하지만 이는 비성서적이다.

칼빈은 시종일관 성도의 견인(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은혜(God's absolute sovereign grace)를 강조했으나, 웨슬레이(Wesley)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결론에 가서는 선행적 은혜(prevenient grace)라는 자기 자신의 언어(his own words)로 인간이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the will of man)의 행위(deed)에 따라 이미(already)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포기하고 만 결과가 된 것이다. 

주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을 받은 사람도 그의 행위에 따라 결국에 가서는 받은 구원이 취소되어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반 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 즉 반 알미니우스주의(semi˗Arminianism)로 칼빈주의(Calvinism)와 배치되는, 소위 신인협력설(synergism)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사역(synergism)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은 창조역사와 같이 구속역사도 독자적으로 하신다.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 입장에서 아날로그(analogue) 방식으로 간단히 요약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1) 자범죄를 포함하여 아담으로부터 유전 받은 원죄(peccatum originale)는 하나님의 은혜(사랑)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음으로(엡 2:8) 사함받아 "중생"(칭의)하여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고, 이후로 

(2)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신이 범하는 자범죄(peccatum actuale)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처벌은 받되,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점진적인 "성화"(고침, healing)를 위하여 징계(채찍)를 받게 되고(히 12:5~13;), 의로운 행위(righteous works)에 대해서는 상급(reward)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계 22:11~12). 이는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섭리(Providence)에 의한 것입니다(눅 23:42; 롬 2:6). 물론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면 자신이 행한 자범죄에 비례하여 형벌이 결정된다. 

중앙취재본부 이창희 기자 jesus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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