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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방 몰려 있던 돈의문 일대, ‘박물관마을’이 되다

기자명 : 장예원 입력시간 : 2018-08-21 (화)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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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수학 과외를 마치고 S고 옆 광화문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서울서 과외 소굴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집집마다 과외 학생들에게 셋방을 놓고 있다. 4평 남짓한 조그마한 방. 둥근 테이블에 15명의 학생이 자리를 잡았다. 흑판 앞에 서 있던 과외 선생은 이번 달 방세가 4만 5,000원으로 결정된 모양이니 각자 3,000원씩 거둬서 내일까지 주인아주머니에게 내라고 했다.”
1980년 2월 7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어느 여고생의 하루’라는 기사 중 일부다. 서울에 과외 소굴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었다니, 도대체 그 기사에 나온 S고 옆 광화문 주택가는 어디일까? 바로 새문안 동네다.
1960년대부터 과외 금지령이 내려진 1980년 7월까지 새문안 동네는 서울의 대표적 과외방 밀집 지역으로 유명했다. 주변에 덕수초, 서울고, 경기중, 경기여고, 경기고 등 명문 학교가 있었고, 광화문과 종로2가 일대에는 유명 입시 학원이 많아 사교육의 적지였던 것. 그러다 1976년 경기고를 필두로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과외방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 과외방을 다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강북 삼성병원 옆 돈의문 박물관마을이다. 남쪽으로는 새문안로, 북쪽으로는 경희궁과 인접한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도시형 한옥과 일본식 주택, 1970~1980년대 양옥 등 여러 시대의 건축물과 삶의 흔적이 다양하게 혼재된 마을이다.
돈의문(1915년에 철거한 서대문) 주변을 2003년 돈의문 뉴타운으로 재개발하면서 돈의문재개발조합이 이 부지를 기부했다. 기부한 부지는 보통 공원이나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조성하기 마련인데, 서울시는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문화시설을 더하는 도심 재생 방식으로 개발해 지난해 9월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개관했다. 보수와 신축 등으로 정리된 가옥은 공연·전시·창작·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그 중 한옥 체험 문화 공간으로 다시 지은 도시형 한옥들이 바로 과외방이 있던 집들이다.

새문안 동네의 역사는 깊다. 1422년 돈의문을 세우고 1623년 경희궁을 지으면서 이 일대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사대부 가옥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차가 개통되고, 조선총독부는 도로 직선화 등을 이유로 1915년 돈의문을 철거하고 불규칙하게 지은 집들을 정비했다.
돈의문을 철거한 후 이 동네에는 다양한 공간적 변화가 일어난다. 조선청년총동맹, 서울청년회, 조선노동교육회, 무산자동지회 등 사회주의 계열 단체가 사무실로 이용했으며, 1930년대에 강위수라는 사람이 이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고 필지를 분할해 도시형 한옥을 조성했다.
한옥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1932년 유한양행이 이곳 일대 부지를 매입하고 사옥을 신축했다. 곡선으로 휘어지며 언덕이 있는 지형을 따라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유한양행은 1936년에 주식회사로 상장했으며, 1962년 신대방동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30년간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했다. 이후 연탄 회사인 강원산업의 사옥, 현대제철 서울영업소로 활용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돈의문 박물관마을 일대는 송월길 가로변을 중심으로 식당이 생기기 시작해 점차 인근의 회사원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가로 발전했다. 1981년 교육청이 송월동으로 이전했으며, 같은 시기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고층 빌딩을 짓고, 경향신문과 문화방송국 정동 사옥 등이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많아진 것이다.
도심 재개발 바람에도 이곳은 조용했다. 덕분에 일제강점기 주택부터 1980년대 양옥까지 서울의 근현대 주택을 함께 볼 수 있는 소중한 지역이 됐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에서 꼭 봐야 할 건축물


1 한옥 체험 공간
7·8번지 일대는 1930년대에 이 일대가 분할되면서 한옥 골목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독립운동과 관련한 여러 단체가 모임을 하거나 교육장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도시형 한옥은 북촌 등지의 한옥과 달리 경사진 구릉지에 지어 일반 5량식 구조가 아닌 한쪽으로 작은 툇마루가 있는 4량식이며, 10평 정도의 규모였다. 1960~1980년대에는 과외방과 하숙집으로 쓰였고, 근처에 병원, 방송국, 관공서가 들어오면서부터는 모든 한옥이 식당으로 변모했다. 서울곰탕, 문화칼국수, 풍미추어탕 등이 유명한 식당이다.

2 유한양행 터
1926년 종로2가 YMCA에서 회사를 설립한 유한양행은 1932년 이곳에 부지를 매입하고 신축 이전했다. 당시 근대 한양도성이 있던 언덕길의 모양을 따라 세 채의 서양식 건물을 새로 짓고 1936년에 주식회사로 상장했다. 이 건물은 1962년 신대방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30년간 유한양행 본사로 쓰였다. 교남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인한 도로 확장으로 유한양행 사옥 중 두 채는 철거되었고, 남은 한 채는 돈의문 박물관마을 사업으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 돈의문 전시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지오’와 한식당 ‘한정’이 사용하던 건물이 돈의문 전시관이 되었다. 아지오는 벽돌 구조의 슬래브 지붕 건물을 이탈리아풍으로 마감하고, 남북 양쪽의 테라스를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으로, 유럽풍의 이색적 분위기 덕에 인기가 많았다. 한정은 원래 주택이던 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곳으로, 주변 관공서나 회사의 접대 식당으로 인기가 높았다. 마당을 멋스럽게 만들어준 괴석은 경희궁 흔적으로 밝혀져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4 서대문여관
한국전쟁으로 가옥이 파괴되고 5년 뒤에 2층 목조 주택으로 새로 짓고, 1961년 현재의 건물로 증축해 1984년부터 서대문여관으로 운영했다. 서대문여관은 주변 대기업이나 공공 기관에 교육을 받으러 지방에서 출장 온 이들이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곳이었다.

5 카페 ‘LP BAR’
개인 소유이던 이 건물에 1924년 <신천지>라는 잡지를 발행하던 출판사가 둥지를 틀었다. 1964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창조사’라는 출판사가 있었고, 최근까지 식당 ‘쿠이’, 카페 ‘LP BAR’로 운영되었다. 마을의 두 골목길이 만나는 길목에 나무가 있는 마당, 박공지붕 건물이 이루는 모습이 시대의 변화를 넘어선 정겨운 풍경이다.

6 한·일·양이 복합된 한옥
1956년 신축해 계속 주택으로 사용하던 집이다. 1층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아래채로 구성된 한옥 평면이고, 2층은 테라스와 서재 등으로 구성된 서양식 평면이지만 구조는 일식 목조 주택을 짓는 방법으로 지어졌다. 한옥을 기본으로 하되 일본의 기술로 짓고, 서양 주택의 로망까지 담은 중요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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