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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영 박사칼럼, “설교자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미국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교수
기자명 : 이창희 입력시간 : 2020-10-16 (금)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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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교수

설교자의 말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어느 목사님의 말씀대로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어 언어구사에 능통하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필자도 동의한다. 본래 구조적 문법(structural grammar)으로 정착된 한국어 어법에 익숙해있는 한국 사람들의 언어의 정서 상, 상하의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언어에서까지 홍길동을 존칭인 홍길동 씨또는 홍길동 님으로 불러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번은 필자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에 교회에 연세가 지긋하신 권사님께서, 어느 청년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그 즉시 청년에게 왜 목사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라며 호통을 치시는 것을 본적이 있다.

 

특히 유교문화의 배경에 젖어 있던 한국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조적 언어는 본질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예를 들면 영어의 경우 구조문법의 어법에는 그 단어에 존칭이 붙어 있지 않고, 오히려 언어학자 놈 촘스키(Noam Chomsky)의 변형 문법적인 어법(the phraseology of transformational grammar)으로 보면, 그 문장의 문맥의 내연적 의미(contextual connotation)에 포함되어 있어서 구태여 단어에 존칭을 의미하는 을 붙이는 언어구조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부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Jesus)예수께서”(Jesus) 혹은 예수가”(Jesus)라고 부른다. 한국 문화에 젖어 있는 교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필자도 미국 목사님들과 대화할 때에 이름 그대로 부른다. 때에 따라 “Rev.”(레버런드)“Mr.”(미스터). 또는 “Brother”(브라더)라는 명칭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Rev. Kerry Duerr,” “Brother Kerry Duerr”라고 말이다. 특히 미국 사람들과 가까워지면 Brother(브라더)를 선호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Mr. Trump(미스터 트럼프)라고 부른다. 이민 사회에서 제3세대(the third generation)인 손자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라고 해야 될 말을 할머니 밥 먹어라라고 말해서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손자가 존칭이 없는 영어권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이다. 변형 문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기호학적 언어표현(the expression of Semiological language)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교자의 말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라는 질문의 본질은 문화적 표현보다도 신학적인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표현의 측면에서 볼 때에 은 천박한 표현이고 말씀은 품격 있는 표현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윗사람에게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고상하고 품격 있고 존경스러운 호칭으로 믿고 사용한다. 그러나 외국어 특히 헬라어나 영어의 경우에는 그런 구분이 없고 같은 표현일 뿐입니다. ““word”(logos)이고 말씀도 똑같은 “word”(logos)이다. 한국어와 같이 존칭이 있거나 없거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단지 문화적 환경에서 존칭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상 한국과 같은 언어 환경에서는 존칭을 쓰는 것이 아름답고 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아들이나 손자 벌 되는 연하의 사람들에게도 존칭을 쓴다. 그러나 오로지 한국의 언어정서의 프레임(frame)에 갇혀서 독선적으로 고집하여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존칭에 있어서도 그 단어나 문맥에 때라 달리 부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예수 씨보다는 예수 님과 같이 말이다. 이것은 문화적 표현상의 차이로 한국어와 달리 헬라어나 영어에 있어서는 이나 말씀의 형식상의 표현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설교자의 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한가? 라는 질문이다. 물론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해야 성경적인 설교가 되겠지만, 지엽적인 비 본질에 있어서는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Bible: the Words of God)은 오류가 없지만, 설교자의 ”(preaching: the words of preacher)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적인 전문용어로 전자를 적용된 진리”(the truth applied)라고 하며, 후자를 재 적용된 진리”(the truth reapplied)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오류가 없지만, 목회자의 말인 설교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면 교인들이 그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을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 라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 강권적인 주권에 의하여 성령으로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the inspired word of God by the Holy Spirit)이지만(딤후 3:16), “설교”(preaching)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조명된 하나님의 말씀”(the illuminated word of God by the Holy Spirit)으로 인간의 인격적 사고와 자유의지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설교에서는 인간의 실수까지 허용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설교 곧 목회자의 에 실수가 허용되지만, 본질적인 근본문제에 있어서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고, 단지 지엽적 비본질적인 형식과 내용에만 허용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한 번 적용된 진리인 성경말씀은 완전영감 되어 오류가 없는 반면에, “설교말씀은 그 말씀을 해석하고 강해하여 적용하는 설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설교자의 인격과 지식이 설교말씀 중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자들 중에 하나님의 교회에서나 심지어 불신자들에게 비방을 듣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본질적으로 왜곡되거나 변질되면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본질의 변함이 없이 표현상의 문제로 인하여 함부로 이단 정죄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설교라면 그 내용은 물론, 그 형식(form)과 전달(delivery)에 있어서도 성경적이며 아름답고 품격 있는 언어구사를 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에 목회자는 품격 있는 말과 설득력 있는 언어구사를 함으로써 교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믿음이 충만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중앙취재본부 이창희 기자 jesus9@daum.net <저작권자 ⓒ 특수경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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