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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영 박사 칼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오해 (롬 13:1-7) (2) (Misunderstanding of the Sovereign Reign of God)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기자명 : 이창희 입력시간 : 2021-02-15 (월)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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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악을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미워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엄연히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먹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고 미리 경고했건만, 아담과 하와는 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결코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같이 된다”라고 하는 뱀(사단)의 거짓된 선동에 미혹되어 그만 금단의 과실(금기법)을 먹고 타락하여 후손들에게까지 저주의 고통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그러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은 선악의 관념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결코 악(죄악)을 용납하지 않는 분이라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둘째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善)을 조장하고 악(惡)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의 말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의(公義, justice,  fP;v]m)라고 한다(렘 5:1). 그러므로 인간이 부정과 부패에 휘말려 죄를 짓고 그 결과를 소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께 떠맡기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왕에 당선된 불법한 왕(통치자)에게는 어찌 대해야 하는가?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허락된 권세이니 복종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말 역시 일면은 맞고 일면은 맞지 않는 논리이다. 그럼 우선 맞는다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진행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불법한 왕에게도 복종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불법한 왕에게 복종해야 하는 운명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한 왕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들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법한 왕이 행하는 불법과 불의까지 순종하라는 뜻이 아니지 않은가? 예를 들면, 세금을 바친다든지, 병역의 의무를 행한다든지 일상의 생활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법에는 복종할 의무가 있으나, 치명적인 악법이나 더욱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과 같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악법에 대해서는 크리스천들이라면 목숨을 거는 순교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여기에서 불신자들과의 견해 차이는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공의(정의)를 세우라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울부짖으며 촉구했다, 그래야 나라가 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죄악의 길을 가고 있었다. 결국,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의 내용을 변경하게 된다. 이제 기회는 다 지나갔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만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을 적국(敵國)인 바벨론(Babylon)에게 내어주기로 결정했으니 이제 모두 바벨론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적국에 포로 되어 간다는 것은 엄청난 징벌이 아닐 수 없다. 나라를 통째로 잃고 적국으로 포로 되어 간다는 것은 최악의 징벌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에서 절망의 메시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처음에는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희망의 메시지였지만, 다음으로 포로로 따라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절망적인 징벌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적국인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서 아들딸도 낳고 거기서 잘 살라고 권고하신다. 바벨론 왕에게 순응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 이러한 말을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위 애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역이요 매국노라고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에게 순종하여 살라고 했다고 해서 악법도 따르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에도 순종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단지 그곳에서의 불의가 아닌 일상생활의 법에 잘 따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악법을 따라 죄를 지으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만이 하나님의 징계를 좀 더 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정하신 왕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방향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징벌 결정으로 적국인 바벨론에 가게 되었는데, 이것도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결정이 축복이 아니라 고난을 예고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으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그 범주 안에서 왕에게 순종하라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로마서 13장을 정확하게 주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세상의 모든 권세와의 관계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우선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는 말씀은 전술한 바와 같이 총론적인 선언으로 이 패키지(package)의 주제가 곧 선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 of God for good and evil)으로 이 패키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contents)과 시스템(system)에 관해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좀 더 전문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1절의 선언적 언급은 디지털(digital) 방식으로 말한 것이고, 그 이후 2절부터 7절까지는 성경적 원리에 따라 그 내용을 아날로그(analogue)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조에 관한 총론적 언급(general remarks)으로 이는 시공을 초월한 디지털 방식의 선언이며, 1장 2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창조의 질서에 따라 시공(time and space)과 순서(order)의 체계, 즉 아날로그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2장 1절에서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 창조의 원리와 인간이 거할 환경인 에덴동산의 창설, 그리고 인간이 지켜야 할 법(선악에 관한)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 권세에 관한 로마서 13장 역시 포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digital)와 구체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analogue)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중앙취재본부 이창희 기자 jesus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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