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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영 박사 칼럼, 통일의 접촉점 (The Point of Contact for Unification)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기자명 : 이창희 입력시간 : 2022-09-12 (월)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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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상반된 갈등구조(conflict structure)로 인한 불화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분법적 구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에나 어디를 가나 이러한 원인으로 인한 갈등으로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좀 더 인생 철학적인 관념으로 표현하자면 선악(善惡) 간의 갈등구조로 인생행로의 끝자락에는 죽음(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이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상반된 관념과 상극구조를 상생 구조로 바꾸어주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재의 역할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상극의 접촉점(point of contact)을 찾아야 한다. 수학적인 표현으로 정답을 위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편의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 그 최소공배수의 역할이 바로 접촉점에 있다. 

[MAIN ISSUES]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 모든 것이 분리되어 상반된 갈등구조(conflict structure)로 인한 불화와 고통을 겪고 있다. 이분법적 구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에나 어디를 가나 이러한 원인으로 인한 갈등으로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좀 더 인생 철학적인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선악(善惡) 간의 갈등구조로 인생행로의 끝자락에는 죽음(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이 갈등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상반된 관념과 상극구조를 상생 구조로 바꾸어주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재의 역할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상극의 접촉점(point of contact)을 찾아야 한다. 수학적인 표현으로 정답을 위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편의 최소공배수(the least common multiple)를 찾아야 한다. 그 최소공배수의 역할이 바로 접촉점(the point of contact)에 있다. 

B.C. 3세기경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과학자(물리학자)였던 알키메데스(Archimedes)가 왕이 금관(gold crown)의 금(gold)의 순도(純度)를 알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고심하던 중, 목욕탕에서 자신의 몸이 물에 잠기는 순간, 물의 넘침을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idea)로 그 방법의 원리를 발견하는 순간, 유레카(Eureka, 알았다)라고 외친 ‘부력의 원리’ (Archimedes’ principle)와 더불어, ‘알키메디안 포인트’(Archimedean point)는 물리학(physics)과 철학사상(philosophical thought)의 출발점(starting point)이 되었다. 알키메데스는 말하기를 자기에게 “지구 밖에 고정된 한 지점을 확보해준다면 지렛대를 이용해 지구를 들어 옮겨보겠다”(δῶς μοί πᾶ στῶ καί τὰν γὰν κινάσω)라고 했다. 철학자들은 이 말에 따라 철학사상의 출발점(starting point)으로 삼았고, 특히 기독교 철학자인 네덜란드의 헤르만 도이엘베르드(Dr. Herman Dooyeweerd)는 그의 기독교 철학의 출발점(the starting point of Christian philosophy)으로 삼았다(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Vol. I, pp. 8~21).

이에 따라 도이엘베르드는 철학사상에서, 단지 우리가 의미의 전체성의 아이디어를 형성할 수 있는 고정된 지점(fixed point)을 철학의 알키메디안 포인트(Archimedean point)라고 부른다. 이 지점(point)을 내재적 자아(immanent ego)와 초월적 전체성(transcendent totality), 즉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God)과 인간(man)의 만남의 접촉점으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설정해서 기독교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전혀 상반된 존재인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곧 중보자(Mediator)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지점(the point of contact between God and man)이 곧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 본성의 깊숙한 곳에 내재한 종교성(religiosity)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은 아덴에 가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에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종교성(religiosity)에 두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Then Paul stood in the midst of the Areopagus and said, ”Men of Athens, I perceive that in all things you are very religious, Act 17:22)라고 하여 아덴 사람들이 종교성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그곳이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이용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THE UNKNOWN GOD)라고 새긴 단(altar)을 통하여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신(God)을 섬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종교성”(religiosity)을 전도의 접촉점으로 설정하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종교성에 따라 섬기고자 하는 “알지 못하는 신”을 똑바로 알려주겠다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했다.

한번은 오래전에 필자가 열차의 옆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이야기하시는 노인의 말씀을 듣는 중에 전도의 접촉점을 발견하고, 즉시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자식이 부모의 부양으로 먹고살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 겁니까?”라고 하자, 할아버지께서 즉시 “그야 불효자식이지!”라고 대답하시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할아버지, 방금 할아버지께서 인간은 모두가 하늘의 녹(祿)을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데도 인간이 하늘의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겁니까?”라고 반문하자, 할아버지께서는 “그야 불효자이지!”라고 대답하셔서, 그러면 할아버지께서도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지 않으시면 불효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으세요.” 그러니까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미 다 늙었으니 집에 가면 40이 된 내 아들에게 꼭 교회에 나가라고 하지”라고 하셔서,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전도한 적이 있다. 여기서 전도의 접촉점(the point of contact)은 바로 “녹을 먹고 사는 자의 효도”라는 것이다.

접촉점을 찾지 못할 때, 화해와 평화통일은 불가능하게 된다. 남조 유다와 북조 이스라엘이 끝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북조는 앗수르에 남조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나라들을 사이에 두고 남방(Egypt) 왕과 북방(Assyria) 왕도 한 밥상(the same table)에 앉아 협상했으나, 서로가 이해관계를 위한 거짓말로 그들의 의도를 숨겼기 때문에 결렬되고 계속해서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단 11장). 요사이 러시아(Rusia)와 우크라이나(Ukraine)도 역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차이로 접촉점을 찾지 못하고 4월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과연 두 나라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접촉점은 무엇인가? 
물론, 피상적으로는 러시아의 세력확장을 위한 영토전쟁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이념’(ideology)과 ‘체제’(regime), 즉 국가의 정치적 정체성(political identity)인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건설을 통한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념에 문제가 없다면, 얼마든지 통일국가가 가능하다. 미국을 비롯하여 과거 소비에트 연방, 중국, 심지어 독일까지도 연방제나 지방자치제가 모두 이념이 같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면, 러시아가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한 통일문제는 어떤가? 역시 이념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념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갈등 속에 살아야 한다. 과거에도 정치적으로 해결해보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려연방제를 제안했지만, 이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접촉점을 민족의 정서인 ‘우리민족끼리’에서 찾으려 하지만 국내문제와 국제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는 역시 불가능하다. 만약에 이러한 논리가 가능하다면,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과 같이 다국적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글로벌 시대에 역시 통일국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좀 어불성설과 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두 이념체제 중, 한 이념체제를 포기해야 한다. 이념과 체제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방법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는 그 근본부터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북통일을 이룰 방법은 영영 기대할 수 없는가? 아니다. 양 체제를 하나로 만들 방법은 피차간의 이념과 체제적 자존심을 뛰어넘는 절대적인 ‘이념’에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념“(God’s ideology) 즉 ‘복음의 이념’이다. 이 복음은 나라를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며, 시간과 공간의 문화적 차이(cultural differences)를 뛰어넘는다. 이 ‘이념’은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 착근한 곳으로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지적 이해와 정서의 중심이 되는 곳인 인간의 ‘종교성’(religiosity)으로, 근본적인 접촉점(point of contact)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이 접촉점을 이용하신다. 다른 피조물이나 동물까지도 이와 같은 접촉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는 이 같은 귀한 본성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이 접촉점을 이용하기에는 무능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 속에서 해방된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통일을 이루었다. 

한국에는 민족통일을 위해 구국 제단을 쌓고 아직도 기도하는 분들과 교회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감리교단 소속인 용문산기도원에서는 1963년부터 60여 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산상에 구국 제단을 쌓고 민족통일을 위해 한순간도 비우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릴레이식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60년이 지났는데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니 지칠 만도 한데, 그 기도는 아직도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고 한다. 바벨론으로 포로가 된 지 70년 만에 귀환하여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조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패망하여 포로 생활한 지 70년 만에 돌아와 하나님 안에서 통일 이스라엘로 독립하여 지금은 세계 중심에 우뚝 서 있듯이, 남북한도 기도한 지 70년이 되어서나 통일될지? 어서 속히 통일되어 현재 세계의 10대 경제 대국과 5대 군사 대국, 그리고 미국 다음으로 2대 선교 대국에서 G2 국가로 우뚝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섬기며 영광을 돌리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합시다.
Amen, Hallelujah! 


중앙취재본부 이창희 기자 jesus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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